오늘은 2025년 건축상 7관왕에 빛나는, 요즘 건축가들 에이코랩을 만나러 떠나봅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들입니다.
대부분의 건축은 새것을 짓고, 중심을 향하고, 정면을 꾸밉니다. 에이코랩은 그 반대편을 봅니다. 남겨진 것, 변두리에 있는 것, 뒷면에 가려진 것. 이들이 ‘나머지’라 부르는 영역입니다. 버려지거나 비껴난 자리에서, 이들은 오히려 가장 고유한 건축을 길어 올립니다.
에이코랩은 2013년 정이삭이 설립한 연희동 기반의 건축사사무소로, 현재 정이삭과 홍진표가 공동으로 이끕니다. 단독주택부터 공공 건축, 사회적 연구와 전시·공연까지 폭넓게 작업해 왔습니다. 정이삭은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큐레이터이자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협력큐레이터를 맡은 동양대 교수이고, 홍진표는 황두진 건축에서 한식 목구조와 리모델링을 익힌 뒤 합류했습니다. DMZ 평화공원 연구, 연평도서관, 용적률 게임, 반지하 다중주택처럼 도시와 제도의 ‘나머지’를 다룬 공공·연구 작업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들의 태도는 ‘나머지성’이라는 한 단어로 모입니다. 정규분포 바깥의 비주류, 중심에서 비껴난 평범한 서사도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나머지는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부족분이자 남는 것(Balance)이면서, 기형과 편차(Anomaly)이기도 합니다.
건물의 정면보다 뒷면에서, 도시의 중심보다 변두리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내려는 태도입니다. 꽃만 기억되지만 그 꽃을 피우는 것은 줄기와 뿌리라는, 나머지가 곧 전체라는 시선입니다. 네 개의 프로젝트가 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N작가 주택’은 최소한의 손길을 더한 리모델링입니다. 기존 담장과 지붕 물매를 그대로 두어 집이 골목·이웃과 맺어온 관계를 지켰고, 담장 밖 골목 계단을 1·2층을 잇는 동선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수직·수평이 틀어진 기존 구조 안쪽에 정형의 田자 틀을 세워 지하와 다락을 증축하고, 가장 인공적인 콘크리트를 가장 자연적인 나무로 보강했습니다. 지하 위로 평상을 띄워 지하와 1층을 한 공간으로 묶고, 그 평상은 밖으로 뻗어 툇마루가 되며 아래에는 채광창을 두었습니다. 외장 벽돌마저 인근 재개발 현장에서 수거해 다시 썼습니다.
‘시타델 카&페’는 나머지성을 가장 직접 선언합니다. 개(Canine)와 고양이(Feline)를 위한 돌 성채, 곧 CaFe입니다. 인간이 아닌 나머지 생명체를 위해 반원의 돔과 볼트라는 가장 원초적인 형상을 택했습니다. ‘시타델’은 크로닌의 소설 ‘성채’이기도 해, 은퇴 후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건축주의 이상이 겹쳐 있습니다. 동서양이 뒤섞인 모순된 요구를 가장 보편적인 형상 하나로 끌어안은 작업이라고 하네요.
‘하나에 하나를 더한 띠’는 좁은 자투리 땅의 그들만의 답입니다. 가각전제(교통을 위해 ‘길 모퉁이를 잘라낸다’는 뜻의 도로 모퉁이 건축선 규정) 로 인해 뭉툭해진 모퉁이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곡면 띠가, 도로에 면해 무용해지기 쉬운 외부를 깊이 있는 전이 공간으로 바꿉니다. 두 띠는 2층에서 빛과 시선을 거르는 스크린이 되기도 합니다. 안쪽은 오픈 플랜의 그리드로 비우고 층고 확보를 위해 1층 바닥을 1m 낮췄으며, 곡면 가벽은 화가인 건축주를 위해 직사광을 거른 간접광을 끌어들입니다.
‘청파동 킷테’는 90년 된 일식 가옥의 재생입니다. 식민지기 일본인의 집이 적산으로 넘어가고 다시 불하된, 탈아입구의 문화주택입니다. 유년의 기억이 담긴 집의 과격한 변형도, 불편을 감수하는 전통적 보존도 원치 않은 건축주를 위해, 양식 간의 드문 조합은 살리고 조악하게 덧댄 것은 걷어냈습니다.
다다미에서 연탄 구들로, 다시 보일러로 이어진 변형의 흔적, 바닥에서 나온 열다섯 겹의 레이어를 지우지 않고 단면에 남겼습니다. 구들을 들이며 잘려 나간 보와 침하된 기둥을 모두 들어 올려 바로잡고, 옻칠로 본래의 나무색과 도코노마(장식용 벽감) 그리고 6첩·8첩 다다미의 형상을 복원했습니다.
새것이 아니라 기존에서, 정면이 아니라 뒷면에서, 중심이 아니라 나머지에서 건축을 찾는 일. 효율과 복제가 미덕이 된 시대에, 에이코랩은 남겨진 것의 고유함을 다시 묻습니다. 정면의 화려함을 좇기보다 뒷면에 깃든 시간과 관계를 읽어내는 일, 그것이 동시대 한국 건축에서 이들이 점하는 드문 자리이기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