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소 이후 가장 조용하게 또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요즘 건축가 이승호를 만나러 떠나봅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공모로 데뷔하고, 수상으로 이름을 알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면, 이승호 소장은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승호 소장은 국내 굴지의 건축사무소에서 부소장으로 재직하며 9년의 실무를 수련한 뒤 2021년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첫 의뢰는 단골 미용실의 인테리어와 화가인 삼촌의 작업실 겸 주택이었어요. 이후 지금까지 설계공모 없이, 건축주가 다음 건축주를 소개하는 방식만으로 일이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시간과 예산을 걸고 지인에게 건축가를 추천한다는 건, 어떤 수상보다 확실한 증거겠죠.)
그렇게 2024년 와이드AR ’Under 40+ 한국의 건축가들‘, 2025년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선정으로 이어지며, 동세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튜디오 승호의 지향은 세 단어로 요약됩니다. 영원성, 보편성, 숭고함. 이 셋을 지닌 고전건축에 뿌리를 두되, 변주 속에서 고유함 을 찾아 기하학적 구조를 안착시키는 건축이라고 해요.
건축주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요건을 예견된 방향으로 안착시키고, 공예적 이해와 기법으로 새로운 감각의 지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정석에 가까운 안이 떠올라도 ’진짜‘가 아니라면 철저히 배제하고, 설계 단계에서 놓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현장을 지킵니다. 네 개의 프로젝트가 이를 보여줍니다.
’논현, THE EDIT 사옥‘은 산만한 도시 미관 속에 단일체(monolith)로 ’멈춰 있음‘을 만든 작업입니다. 최대 용적률이라는 근린생활시설의 숙제를 벗어날 수 없는 조건에서, 특수 구조설계로 실내에 기둥 없는 대공간을 확보해 변주를 주었습니다.
층마다 마주하는 옆 대지의 건물과 도시 풍경을 기민하게 분석해, 층별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쌓아 올리되 겉으로는 하나의 검은 매스로 침묵하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제주, POPPLAT‘은 ’100평 같은 70평‘이라는 건축주의 요구에 대한 답입니다. 해법은 매트-빌딩(mat-building), 층을 높이 쌓는 대신 낮고 넓게 펼쳐 실내와 마당, 통로를 카펫처럼 촘촘히 엮는 건축 유형입니다. 단일한 박스 안에서 내외부와 상하부, 주위 풍광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한편, 제주의 기후로부터 보호받고 프라이버시가 지켜집니다. 검은 매스가 제주의 돌무더기 위에 조용히 앉은 이 집은, 면적이 아니라 연결이 넓이를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
네요.
’연희, 모던애니멀 HQ & 어파트프롬댓 스토어‘는 1995년에 지어진 하숙집을 증축 대수선한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지향점을 건축적, 공간적으로 추상화해 표현하되, 주거지역에 위치한 점을 고려해 저층부의 가로에 면한 부분을 섬세하게 다듬었습니다.
이승호 소장은 자신의 작업을 두 축으로 설명합니다. 건축가로서의 자아에 충실한 프로젝트와, 건축교육의 강박에서 해방 된 프로젝트.논현,제주, 청담이 전자라면 이 작업은 후자라고 해요.
’청담, 엔조 증축‘은 가장 작은 프로젝트에서 태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입니다. 기존 건물에 33㎡ 남짓한 대표이사의 집무 및 접견 공간을 증축하며, 한정된 면적과 공사 기간, 예산 안에서 넓고 풍부한 공간감을 고민했습니다.
일조권 사선제한(주변 대지의 햇빛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높이를 비스듬히 제한하는 규정)의 틀 안에서 형태는 입방체가 되어야 했고, 주변 건물과 떨어져 시야를 막는 것이 없었기에 장식 없이 자연광만을 끌어들였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볼륨이 달리 보이는, 제약을 형태의 근거로 삼은 작업으로 보입니다.
주택과 사옥, 쇼룸을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두고 정체성이 모호하다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승호 소장에게는 모든 부류의 작업이 건축가로서 고유함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