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탐방

이타미 준의 가장 제주다운 호텔

포도호텔

연재 제주

건축가 이타미 준

지도에서 보기 포도호텔 · 제주 서귀포시

오늘은 서귀포 중산간의 포도호텔로 떠나봅니다.

먼저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 한국 이름은 유동룡(庾東龍) 입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평생 한국 국적을 놓지 않았던,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부른 분이죠. (예명도 한국을 오갈 때 이용하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따왔다고 해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과 일본 건축가협회상까지 받은 건축가지만,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작업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 봤을테지만, 제대로 소개한 적이 없어 오늘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포도호텔의 컨셉과 시작은 이타미 준이 1999년 호텔계획안을 요청한 발주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포도를 ’자연발생적인 식물‘로 읽으면서 시작합니다. 누가 줄 맞춰 심지 않아도 알아서 뻗는 덩굴처럼, 객실 하나하나를 지형이 흐르는 대로 앉히는 것이 의도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포도호텔은 하늘로 치솟지 않아요. 단 한 층, 낮게 엎드린 단층입니다. 오름의 완만한 능선과 제주 초가의 지붕선을 이어받았습니다.

객실도 한 덩어리로 붙지 않고 포도알처럼 개별로 나뉘어 앉는데, 방을 나눠 짓던 제주 초가의 ’두거리,세거리‘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로는 빛이 들어와 복도에서도 자연을 바라볼 수 있구요.

형태만이 아니라 재료도 초가를 닮았어요. 지붕의 만듦새부터 제주 초가와 가깝고, 한실엔 서까래,황토,한지,온돌 같은 우리 재료와 공법이 그대로 쓰였습니다. 편지에 적힌 바람 막는 돌쌓기, 자른 벽돌 섞인 벽도 실제로 남아 있구요.

제주 건축계는 이 땅의 바람과 지형을 그대로 끌어안은 이 집을 두고 ”이게 진짜 제주다운 건물“이라 평가하기도 해, 경계인이 지은 건축이 제주다운 건축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도호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포도호텔의 복도는 유난히 넓은데, 걷다 보면 이게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란 걸 알게 되는데요,

발주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중앙 통로는 마을 내부의 길을 의미합니다.“ 기능적인 복도가 아니라 마을의 올레를 생각했다고 하네요. 지면 높낮이를 따라 작은 계단이 이어지고, 문과 창으로는 열림을, 벽과 코너로는 닫힘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복도를 걷는 일이 방으로 가는 절차가 아니라 하나의 산책이 됩니다. 도심에서 만나는 목적만 남은 기능적인 호텔의 복도와는 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 길 한가운데엔 캐스케이드가 있습니다. 천장이 하늘로 뻥 뚫려 있어 빛과 날씨가 시간마다 다르게 쏟아져요. 닫힌 듯 열리고, 안에 있는데 밖 같은 순간들. 편지 속 ’담기다, 열다, 닫다, 혼재하다‘ 같은 말들이 그대로 공간으로 번역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포도호텔은 발주자 김홍주회장의 오랜 꿈의 일부이기도 해요. 그는 이 중산간 땅에 골프장과 포도호텔을 세우고, 비오토피아,방주교회,수풍석미술관까지 하나의 마을처럼 엮어갔습니다. 모두 이타미 준의 손을 거쳤구요. *지금은 SK핀크스에서 운영중입니다.

이타미 준은 단순히 건축을 만드는 데 만족해선 안 되고, 나를 주체로 두었을 때 어떤 세계와 여백이 펼쳐질지를 끝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받는 건축의 방식에서 형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도 이곳에서 다시 배웁니다. 여러분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어디를 떠올리시나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863
🏛 포도호텔 (2001, 이타미 준 / 유동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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