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탐방 영상

자동차를 몰라도 꼭 가봐야 할 박물관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슈투트가르트

지도에서 보기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늘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으로 떠나봅니다.

도시 입구를 지나는 B14 도로변, 운터튀르크하임에 은빛 곡면의 건물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바로 옆으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생산 부지가 이어지구요. 2001년 설계공모에서 한국에서는 압구정 갤러리아 서관의 설계자로 많이 알려진 네덜란드의 UNStudio가 구조 엔지니어 베르너 조벡과 함께 당선됐습니다.

5년의 설계와 공사를 거쳐 2006년 5월 19일 문을 열었는데요. 같은 해 독일 월드컵에 맞춘 일정이었죠. 콘크리트 포디움 (저층 기단부) 아래로는 약 100m 길이의 통로가 나 있어 옆의 메르세데스-벤츠 센터와 연결된다고 합니다.

이 건물의 바닥, 즉 평면은 세 개의 원이 겹친 클로버 모양, 트레포일(trefoil)입니다. 세 장의 잎이 가운데 줄기 역할을 하는 중정 아트리움에 붙어 있는 구조라고 해요. 그 둘레를 반원형 바닥판들이 층마다 회전하며 감아 오르고, 내부에는 DNA처럼 두 가닥이 꼬인 이중나선이 만들어집니다. 다이어그램도 워낙 유명하죠. (나선 램프를 따라 내려오는 미술관이라면 원조는 라이트의 구겐하임이 있겠네요.)

재밌는 건 이 수학적인 형태의 출발이 철사와 판지로 대충 만든 작업 모형이었다는 이야기예요. 그 모형을 컴퓨터로 정밀하게 풀어낸 끝에 기둥 없이 최대 30m를 건너는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관람은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진행됩니다. 입구에서 캡슐처럼 생긴 엘리베이터 세 대 중 하나를 타고 아트리움을 올라가는데요. 눈높이에 난 좁은 틈으로 벽에 투사된 브랜드의 역사가 지나간다고 하네요. 꼭대기에 도착하면 1886년,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해로 돌아가 있습니다. 첫 방에는 자동차의 발명을 다룬 공간답게 가장 오래된 차 세 대가 놓여 있다고 해요.

여기서부터 길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브랜드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풀어낸 '레전드 룸'이고 다른 하나는 차량과 트럭을 주제별로 모은 '컬렉션 룸'이에요. 두 공간은 성격도 정반대로 설계됐구요. 레전드 룸은 빛을 막고 인공조명으로 연출한 극장 같은 공간이라고 해요. 두 동선은 나선을 따라 내려오며 여러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관람객은 언제든 다른 길로 갈아탈 수 있죠.

층의 높이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반원형 바닥판이 아트리움을 돌며 한 층 높이와 두 층 높이의 공간을 번갈아 만들어요. 낮은 방에서 전시물을 가까이 보다가 높은 홀로 나오면 시야가 확 열리는 리듬이 생기는 구조죠. 4,800㎡ 남짓한 땅 위에 16,500㎡의 전시 공간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나선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주차 타워의 아주 먼 친척 같기도 하네요😅)

시간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험. 기하학적 평면이 그대로 전시의 시나리오가 되는 건축물 중 대표격이죠.

9개 층에는 160대의 차량과 1,500점이 넘는 전시물이 놓여 있습니다. 전시 디자인은 슈투트가르트의 HG 메르츠가, 커튼은 페트라 블라이세(Inside Outside)가 맡았구요. 완만한 램프를 따라 여러 시대의 차들 사이를 걷다 보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는 게 설계자의 설명입니다.

바깥의 곡선도 주변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UNStudio는 근처의 축구 경기장과 메르세데스-벤츠 테스트 트랙, 강변의 가스·오일 탱크, 부지를 감도는 도로의 루프처럼 둥근 풍경에 이 건물을 맞췄다고 설명해요. 도로와 공장 사이에서 자란 브랜드의 박물관이 그 동네의 곡선을 닮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도로 위에서 보이는 은빛 외피와 안에서 걷는 나선이 같은 트레포일에서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구요.

2008년 독일 콘크리트 건축상, 2009년 휴고 헤링 상을 받았고 지금도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많이 찾는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해요. 이전 박물관 시절에도 연간 45만 명이 찾던 곳이었으니, 새 건물에 거는 기대가 컸을 것 같습니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어도 건축만 보러 가기에도 충분한 곳이니 꼭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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