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교수님이 설계한 북촌의 문화공간
아트센터 림
건축가 정재헌
오늘은 소격동 골목으로 떠나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정독도서관 사이, 상업적인 매장들 사이 유독 조용한 얼굴의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아트센터 림입니다.
간판으로 자기를 설명하기보다, 비례와 재료로 또 차분함을 주고 있는 건물이죠.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정재헌, 모노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자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입니다. 빛과 기하학, 콘크리트의 물성을 다루는 프랑스 모더니즘의 계보를 몸으로 익히고 돌아와 한국에서 많은 작업들을 남겼습니다. 도천 라일락집으로 서울시건축상 대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고, 양평 펼친집, 호시담, 두물머리 주택, 카페 운중동처럼 형태보다 완성도로 기억되는 작업을 꾸준히 쌓아온 건축가에요.
파격적인 형태로 시선을 끄는 대신, 창의 높이와 복도의 폭, 벽돌 줄눈의 두께 같은 치수를 몸의 감각으로 조율해 공간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재료를 보면 당혹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재료도 시간과 함께 우아하게 늙기를 바라는 태도. 저는 이 한 문장이 그의 건축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트센터 림은 그 태도가 전시라는 프로그램을 만났을 때 어떤 답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먼저 갤러리는 높은 층고와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전시장입니다. 인공조명으로만 통제되는 블랙박스형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하루의 시간과 날씨에 따라 작품의 표정이 달라지는 방이에요. 사실 자연광을 들이는 전시장은 운영자 입장에서 까다로운 선택입니다. 보존과 균질한 조도를 생각하면 창을 막는 편이 훨씬 편하니까요.
그럼에도 빛을 남겨두었다는 건, 이곳이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마주하는 장소이기를 택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밀도가 섬세한 작업을 걸었을 때 그 빛의 결이 특히 살아납니다.
지하 2층에는 120석 규모의 아트홀이 자리한다고 해요. 클래식, 국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은 물론 독주회와 실내악, 마스터클래스까지 소화하는 규모예요. 위층에서 그림을 보고, 지하로 내려가 연주를 듣고, 나오는 길에 커피를 마시는 동선이 한 건물 안에서 수직으로 이어집니다. 큰 미술관이 면적으로 만드는 밀도를, 이 건물은 층마다 성격을 달리하며 만들어내고 있어요.
입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경복궁 동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갤러리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소격동은 서울에서 예술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동네예요. 그 한복판에서 아트센터 림은 목소리를 키우는 대신, 골목의 스케일에 맞춰 조용히 자리를 잡는 쪽을 택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같은 건물의 커피 림
아트센터 림이 스스로 밝힌 문장이 있습니다. 화면 너머의 세계를 소망하는 삶이 당연해진 21세기지만, 예술은 실제로 마주하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새로운 세대와 나누기 위해 이 공간을 시작했다는 것.
이 선언은 건축가에게 꽤 어려운 숙제를 던집니다. 스크린을 이길 만큼 강렬한 공간을 만들라는 게 아니라, 스크린이 절대 줄 수 없는 것을 주라는 요구니까요. 그 답이 자극적인 형태가 아니라 빛과 비례, 몸이 기억하는 치수라는 점에서 정재헌은 이 건물에 가장 적합한 건축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다녀오는 길이라면, 같은 블록에서 조금만 더 걸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정재헌 교수님의 작업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직접 서 있을 때 훨씬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7
주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또는 정독도서관 주차장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