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미드타운, 56번가와 57번가 사이.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완벽한 위치 위로 얇고 기다란 선이 솟아오릅니다. 뉴욕의 상징적인 스카이라인 중에서도 오히려 세장한 비율로 눈길을 끄는 새하얀 건물이죠.
432 Park Avenue 지명이자 건물 이름이기도 한 이 건축은 우루과이 출신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한 세계에서 가장 ‘가느다란 마천루(Super Slender Tower)’입니다.
이 건물의 형태는 극단적으로 단순합니다. 높이 425.5m, 지상 90층, 평면은 한 변 29m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죠. 폭과 높이의 비율은 무려 1:15. 이 비율 덕분에 ‘연필 타워‘라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단순함은 고차원적 계산의 결과입니다. 비뇰리는 건축의 구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표작 동경국제포럼, 한국의 종로타워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합니다.) 외벽의 두께 1.12m 노출 콘크리트 격자 프레임(영상에서 보이는 외관이 구조 그 자체)이 그대로 외피가 되고, 3×3m 정사각형 창이 리듬처럼 반복됩니다. 빛은 격자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그 그림자는 도시의 가로 위로 길게 드리워지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비뇰리는 이 단순한 정사각형 안에서 구조와 공간의 질서를 동시에 완성했습니다. 중심에는 9.1×9.1m 콘크리트 중심부(코어)가 배치되고, 그 밖으로는 기둥 하나 없는 무주공간(Free Plan)이 펼쳐집니다. 덕분에 주거 공간의 레이아웃은 자율적 구성이 가능하죠. 또한 너무 얇고 높은 구조이기에 12개 층마다 두 개 층 규모의 Wind Pass-Thru(풍압 저감층)를 삽입해 바람이 관통하며 흔들림을 제어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외형은 최소로, 내부는 최대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내부는 데보라 버크가 이끄는 ’TenBerke‘가 디자인했습니다. 대리석과 오크, 금속과 유리가 어우러진 미니멀한 공간. 욕실의 통대리석 바닥과 도시를 향해 열린 창가의 욕조는 이 타워의 상징이 되었죠.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뉴욕의 하늘이 거대한 프레임 속에 한 폭의 회화처럼 담깁니다. (서울의 아크로 포레스트가..)
104세대의 유닛 대부분은 한 층에 한 가구만 배치된 독립형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각 유닛은 약 400~800㎡, 펜트하우스는 약 1,200㎡에 이릅니다. 2021년, 최고층 펜트하우스는 약 1,980억 원에 매물로 나왔으며, 현재는 그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이네요.
비뇰리는 이 건축을 “비례의 완벽한 실험”이라 불렀습니다. 그에게 정사각형은 우주의 언어이자 뉴욕이라는 도시의 혼돈에 맞서는 질서였죠. 이 격자 구상은 비엔나 분리파 조셉 호프만이 디자인한 정사각형 휴지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Josef Hoffmann, Vase, c.1905 | MoMA 소장)
외형의 반복은 단조로움을 넘어 질서로 자리잡아, 시간의 변화 속에서도 예술 작품으로 남길 바랐다고 해요. 물론 질서정연한 완벽함 아래에는 균열도 있었습니다. 입주 이후 고층부의 바람 진동, 엘리베이터 고장, 누수 등의 문제가 제기되며 초세장 구조의 물리적 한계가 드러났죠.
하지만 그 불안정함조차 뉴욕의 표어 ‘Excelsior’ 라틴어 ‘더 높이’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끊임없이 상승하는 도시의 욕망과 성장 말이에요. 그 사이에서 건축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작업을 내놓았을까요.
특이한 점은 이곳의 거주자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고, 대부분의 세대가 1년 중 10개월 이상 비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432 Park Avenue는 거대한 주거 건축이자 동시에 ‘비어 있는 오브제’처럼 존재하게 되었네요.
이전에 소개해드린 270park avenue에 이어, 20세기 마천루의 유산 위에 세워진 21세기적 미니멀리즘의 선언이며, 뉴욕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건축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찌르지만 땅에는 조용히 닿아 있는, 그러나 고개를 들기 전까지는 특별한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 이 건축을 바라보며,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화려한 아르데코 문양의 스카이라인 속에서, 이 건축은 가장 조용한 형태로 뉴욕의 중심을 관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