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탐방

건축학과 교수가 만든, 집 같은 호텔

🏆 2021년 제44회 한국건축가협회상 _정재헌(경희대학교)

나무호텔

건축가 정재헌

지도에서 보기 나무호텔 · 서울 광진구

오늘은 멀리 떠나지 않고, 서울 도시의 경계에서 집처럼 머무를 수 있는 고요를 찾으러 워커힐 언덕 아래로 떠나봅니다.

도시에는 속도가 바뀌는 지점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기 전, 도로가 갈라지고 풍경이 산만해지는 곳. 기능만 남은 건물들이 줄지어 선 서울의 경계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호텔의 이미지(로고나 화려한 형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정재헌 교수님이 설계한 나무호텔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호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떠나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느냐에 가깝습니다.

호텔의 위치는 한강과 가깝지만, 최상부층을 제외하면 조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입지입니다. 흔히 기대하는 시원한 통창 대신 수직 루버가 자리하고, 강렬한 외관 대신 암석처럼 묵직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외부를 향한 시선을 의도적으로 최소화하며, 기존의 호텔과는 다른 질문을 방문객에게 던집니다. 어떤 경험을 하고 떠나겠느냐고요.

호텔의 주 출입구는 큰길이 아니라, 한 바퀴 돌아 들어가야 만나는 골목에 있습니다. 번잡한 거리에서 벗어나 구별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짧은 여정. 길게 돌출된 현관 캐노피 하부에는 삼목 루버가 적용되어, 도시의 거친 질감에서 실내의 고요로 넘어가는 전이감, 즉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중간의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외부의 언어는 이어지지만, 눈에 띄는 장식이나 과장된 연출은 없습니다. 대신 거친 고벽돌 사이로 슬쩍 드러난 삼목 천장면이 다시 한 번 감각을 끌어올립니다. 삼나무의 결, 벽돌의 밀도, 바닥 위로 번지는 빛의 온도. 돌과 빛, 소리 같은 낮은 감각들이 오늘 머물 ‘집’으로 사람을 안내합니다. 도시는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감각은 안쪽으로 끌려옵니다. 온전히 나무로 둘러싸인(바닥까지 원목 마루로 마감된)리셉션에서 객실 키를 받아 들고, 나만의 객실이자 ‘방’으로 향합니다.

이곳의 객실은 모두 다릅니다. 규격화된 대형 프랜차이즈 호텔과는 처음부터 다른 접근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객실은 면적과 구조, 가구의 배치가 같지 않습니다. 저 역시 객실 컨디션 이슈로 한 차례 객실을 변경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타입의 객실임에도 가구와 수전 디자인이 모두 달라 인상적이었습니다. 창을 가리는 루버의 형태도 다르고, 욕조와 수전 역시 VOLA사의 수전을 색상별로 배치해 두었습니다.

같은 유형의 방을 반복하지 않고, 각기 다른 조건에 맞춰 계획된 공간들이 모여 하나의 호텔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제가 묵은 객실은 테라스원 타입이었는데요. 완전히 열리지도, 완전히 닫히지도 않은 외부 공간에서 외부 공기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이 계절보다는 더 따뜻한 계절에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선은 보호되지만 계절과 날씨, 햇빛과 바람은 그대로 들어옵니다. 이곳의 자연은 그대로 노출되지 않고, 기하학적으로 절제된 건축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채 다가옵니다.

나무호텔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시간이 흐르는 장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침의 빛이 바닥에 길게 내려앉고, 저녁에는 루버 사이로 조명이 번집니다. 이 호텔은 특정 순간을 연출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최근 정재헌 교수님의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제프리 바와의 풍경 건축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태도는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시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재헌 교수님은 집을 디자인하기보다, 삶이 머무는 방식을 고민해 온 건축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택 건축 분야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아온 건축가인 만큼, 호텔 역시 잠만 자는 장소가 아니라 ‘쉬는 집’으로 정의하며,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곳 전반에 스며 있습니다.

나무호텔은 새로 지어진 건물임에도 유난히 튀지 않습니다. 주변을 압도하지도, 소란을 이기려 들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경험이 나무처럼 조용히 자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이 호텔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괜찮은 공간입니다. 머무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사한 공간인것이 ‘집’을 닮았습니다.

더 많은 건축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pace.text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