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을지로의 오래된 뒷골목으로 떠나 봅니다. 을지로3가역 9번 출구에서 1~2분 정도 걸으면, 도시의 리듬이 갑자기 바뀌는 순간을 만날 수 있어요. 오래된 2층 건물과 20층짜리 새 오피스가 한 화면 안에 포개지고, 골목의 질감과 도시의 속도가 동시에 들리는 곳. 그 사이에서 아주 낯선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습니다.
이 건물이 공모에서 제안된 이름은 ”MONTAGE 4:5“. 영화에서 ‘장면과 장면을 조합해 하나의 의미를 만드는 편집 방식’을 말하죠.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집단중 하나인 Mass Studies는 이 단어를 그대로 건축의 태도로 가져왔어요. 도시의 단면, 골목의 결, 높이의 충돌,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한 건물에서 겹쳐지고 이어지는 방식으로요.
이곳이 바로 서울의 새로운 영화 복합문화공간, 서울영화센터(서울시네마테크)가 자리한 곳입니다. 사실 이 건물은, 단순히 새로 생긴 문화시설 이상의 시간을 품고 있어요. 2006년부터 영화계가 꿈꿔왔던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동으로 시작된 이야기. 정책의 벽에 가로막혀 몇 번이나 무산될 뻔했고, 2016년에야 겨우 심의가 통과되었죠.
2017년 국제설계공모에서 Mass Studies의 ‘MONTAGE 4:5’가 선정된 뒤 2020년 착공을 시작했지만, 공기는 계속 밀렸고, 결국 2025년 11월 28일에야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은 ‘명칭 변경과 용도 수정’, ‘운영 주체 문제’로 인해 논란 속에서 서 있습니다.
이 복잡한 맥락을 안고 있는 건물의 외관은 오히려 담담합니다. 새하얀 콘크리트. 어떤 장식도, 어떤 과시도 없는 표정. 을지로의 과잉된 자극 속에서, 스스로를 ‘비워진 화면’처럼 두고 주변의 장면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처럼 보였어요.
완공된 현장사진에 따르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차분한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어요, 1층 로비는 붉은 천장으로 사람을 맞이하고, 마치 오래된 극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듯한 감각이 있구요. 지하로 내려가면 300석의 대극장이 숨어 있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목재로 감싸인 영화 도서관, 어둠을 품은 강의실, 작업실과 미디어 룸, 그리고 가장 위엔 하늘에 닿을 듯한 옥상극장이 기다립니다.
닫힌 상자 같은 상영관 사이로 로비·도서관·발코니 같은 열린 공간이 끼어들며 수직적 경험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고 합니다. 흥미로웠던 건, 이 건물이 골목길의 수평적 경험을 ‘수직적 도시성’으로 번역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지하에서 옥상까지 이어지는 동선 속에서, 어둠과 빛, 개방과 밀도, 조용함과 소음이 끊임없이 교차된다고 해요.
조민석 소장님은 이것을 ‘건축적 몽타주’라고 설명합니다. 장면 하나하나는 독립적이지만, 그 조합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방식. 영화를 담는 공간이면서, 하나의 영화처럼 경험되는 건축이라구요.
이 건물을 둘러싼 현실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본래 ‘서울시네마테크’로서 독립영화와 아카이브 중심의 운영을 목표로 했지만, 2023년 이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명칭을 ‘서울영화센터’로 변경했고 내부 좌석 구조와 운영 계획도 수정됐습니다. 운영권 입찰 과정에서도 독립성 침해 논란이 이어졌고, 봉준호·박찬욱·김지운·류승완 감독을 포함한 수많은 영화인들과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연속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원안 복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OTT 시대에도 아카이브는 필요 없다”는 담당자의 답변은 더 큰 논란을 만들었죠. 그래서 이 건물은 지금, 도시와 영화계, 정책과 문화의 여러 층위가 한 화면에 겹쳐진 장면처럼 서 있습니다. 건축은 완성됐지만, 제안되었던 이름인 ‘편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건축 결과물에선 매우 드물게, ‘상업성보다 순수한 영화적 감각’을 공간에 그대로 품고 있다는 점과, 영화가 태어나고, 사라지고, 기록되고, 다시 읽히는 서사적 흐름이 공간 안에 정직하게 담겨 있는 점은 가보고 싶은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