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한가운데, 도시의 분주한 흐름을 잠재우듯 서 있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장식도 없고, 과시도 없습니다. 그 공간이 지닌 고요한 힘은 방문자를 자연스레 이끌어들이죠. 오늘은 이곳,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에서 열리는 전시를 소개하러 떠나봅니다. 이 건물은 ’건축이 기업 철학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 사옥은 2023 프리츠커 수상자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입니다. 그는 ‘의미, 기억, 유산의 수호자’로 불리며, 단순한 형태미를 넘어 장소성과 시간성,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건축에 녹여내는 철학으로 잘 알려져 있죠.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 속에서 정제된 중심축처럼 기능하면서도 치퍼필드의 절제된 미학을 건축으로 구현한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높이로 과시하지 않고, 거대한 중정을 중심으로 수평적 질서를 이루며 조용한 위엄을 드러냅니다. 반복되는 기하학적 모듈과 재료 본연의 물성은 기능과 형태의 일치를 추구한 치퍼필드의 철학을 잘 반영하구요.
이 사옥은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과 한국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후 치퍼필드만의 건축 언어로 정제해 복잡한 맥락이 얽혀있는 도심에 ‘질서’를 안착시킨 성공적인 사례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에서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가 바로 『조선민화전(Beyond Joseon Minhwa)』인데요, 아모레퍼시픽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민간에서 꽃피운 민화의 미학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조명한다고 합니다. 절제와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건축 공간 속에 색채와 상징이 풍부한 민화가 놓이면서,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긴장감이 생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감정들을 느끼실 지 궁금합니다.
민화는 민간의 일상과 염원을 담아 그려진 그림으로, 책가도, 호작도, 어변성룡도, 운룡도 등 다양한 주제 속에 각기 다른 서사와 상징을 품고 있다고 해요, 이는 곧, 그 시대 대중의 정서와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매개이기도 하죠.
특히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이택균의 ’책가도10폭‘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미카 에르테군의 뉴욕 컬렉션에 속해 있었던 작품으로, 국제적 감각과 가치를 모두 지닌 민화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수련도’,‘관동팔경도’,‘백선도’,‘호작도’,‘운룡도’ 등 각 주제마다 시대적 감성을 반영한 대표작 100여 점이 전시되어 풍성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구요. 더불어, 민화가 당대 공예와 맺은 관계를 보여주는 도자기, 금속, 섬유 등의 공예품도 함께 소개되며, 민화가 생활문화 전반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민화전』은 정제된 서구적인 건축 안에 전통 회화의 생동하는 감성을 펼쳐놓음으로써, 관람객에게 전혀 새로운 감각의 미술 경험을 선사합니다.
절제와 유희, 기하와 감성, 구조와 이야기ㅡ이 상반된 언어들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며, 민화가 여전히 동시대와 통하는 예술임을 증명하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건축과 회화가 만나는 이 전시는 진짜 ‘한국의 미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대비는 어쩌면 가장 멋진 어울림으로 보입니다. (호암미술관 겸재정선전과 더불어 눈이 호강하는 한 해네요!)